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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와 프랭크 게리 – 시대를 흔든 창조의 손길

by I watch Trends. 2025. 8.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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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거장과 현대 건축의 아이콘.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재료를 다뤘지만,
두 사람은 불가능을 아름다움으로 바꾼 창조자였다.
 
 

피에타 / 미켈란제로 / 프랭크게리 /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

1.  대리석과 철판, 서로 다른 재료

1508년 로마 바티칸. 젊은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명으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맡았다.

사실 그는 조각가였지만, 4년간 천장에 매달려 천지창조를 완성했다.

그는 근육 하나, 표정 하나에도 생명을 불어넣으며 “세부에 신이 깃든다”는 철학을 증명했다.

 

수백 년 뒤, 로스앤젤레스. 프랭크 게리는 차고에서 금속판과 골판지를 오려 붙이며 모형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쓰레기를 붙이는 건가?”라 했지만, 그의 실험은 건축의 새로운 언어였다. 훗날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그의 곡선과 뒤틀림은 도시의 상징이 된다.

2. 공통점 – 불가능에 도전한 장인

   a. 권위와 맞섰다:

     미켈란젤로는 교황과 갈등하며도 예술의 진실성을 지켰고,

     게리는 개발자들의 반발에도 “도시도 예술”이라 외쳤다.

 

   b. 기술을 넘어선 상상: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에서 인간을 꺼내듯 조각했고,

      게리는 CAD를 활용해 자유 곡선을 현실로 만들었다.

 

   c.  작품이 도시를 바꾸다:

        다비드상은 르네상스 인간주의를,

       구겐하임 빌바오는 한 도시의 경제와 문화를 바꾸었다.

3. 차이점 – 완벽과 파괴의 미학

미켈란젤로는 신성한 비례와 완벽을 추구했다. 인간의 몸은 이상적 조화의 상징이었다.

게리는 질서를 해체했다. 벽 대신 곡선, 균형 대신 충돌. 그의 건축은 “예측 불가능성 자체가 아름다움”이라는 선언이었다.

4. 일화로 본 두 천재

미켈란젤로는 버려진 대리석에서 다비드상을 조각했다. 흠집 때문에 불가능하다던 돌에서 르네상스의 상징을 꺼내놓았다.

게리는 어린 시절 금속 조각을 장난감 삼았다. 남들이 쓰레기로 본 재료가 훗날 건축 언어가 되었다.

두 이야기 모두 불가능 속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길어낸 사례다.

 

5. 미켈란젤로 vs 프랭크 게리 

구분 미켈란젤로 프랭크 게리
시대 르네상스 (1475–1564) 현대 (1929– )
대표 작품 다비드상, 피에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구겐하임 빌바오, 디즈니 콘서트홀, 루이비통 재단
철학 완벽한 비례, 질서, 신성 추구 해체, 자유로운 곡선, 예측 불가능성
재료 대리석, 프레스코 금속판, 유리, CAD
일화 버려진 대리석에서 다비드를 창조 금속 조각 놀이가 건축 언어로 발전
영향 르네상스 인간주의 확산 현대 도시 건축 패러다임 전환
공통점 권위와 한계에 도전하며 불가능을 예술로 만든 창조성

6.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미술과 건축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미켈란젤로가 인간의 이상을 통해 시대정신을 남겼듯,
게리가 도시 자체를 예술로 만든 것처럼, 앞으로의 예술은 형식 너머의 의미를 담아야 한다.

AI와 디지털 도구가 열어주는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도,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감정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연결하는 시선이다.

7.  마무리하며 

미켈란젤로와 프랭크 게리는 서로 다른 시대와 방식으로 예술을 펼쳤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던졌다.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화려한 형식 너머, 인간과 사회의 이야기를 담는 용기야말로 우리가 앞으로 미술과 건축을 바라보는 핵심 시선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