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배주석병권1 왕건과 송 태조: 무에서 문으로, 바다에서 관료제로 후삼국의 바람이 거칠던 10세기, 송악(개성)의 젊은 무장 왕건은 배를 띄워 물류를 움직이던 상인 집안의 감각으로 전장을 읽었다. 강가의 안개가 걷히면, 그는 항구와 곡창을 잇는 물길에 먼저 깃발을 꽂았다. 같은 세기, 중국 북부의 새벽. 조광윤(송 태조)은 출정을 앞두고 진교(陳橋)에서 군사들에게 황색 비단옷을 입혀져 추대된다. 이른바 진교의 변(960). 그는 즉위하고 북송을 세운다. 공통된 시작점: 분열의 끝을 매듭짓겠다는 결심. 왕건은 바다의 길로, 조광윤은 군의 길로 그 결심을 실행했다. 1. 권력을 잡는 방식: 해상 연합 vs 군권 장악왕건은 정면충돌만 하지 않았다. 혼인동맹과 상인 네트워크, 항구·수로 장악으로 먹고 싸우는 길(보급선)을 먼저 만들었다.공산 전투(927)의 패배 후에도 해.. 2025. 8. 29.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