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인간에게 언제나 도전과 신비였다. 누군가는 그 앞에서 무릎 꿇었고, 누군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정상을 딛고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한국의 엄홍길대장,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두 산악인의 삶은 ‘정상’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그 발자취에는 도전과 나눔이 함께 담겨 있다.

1. 정상에 선 순간
1953년, 힐러리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그는 원래 뉴질랜드 시골의 평범한 양봉업자였다.
그러나 끝내 세계사의 한 장면에 이름을 남겼다. 정상에 선 뒤 남긴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에베레스트가 우리를 허락한 것이다.
수십 년 뒤, 엄홍길은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6좌를 모두 오르며 신화를 세웠다.
그는 무려 세 번 도전 끝에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성공했기에, 그 정상은 누구보다 값졌다.
그는 “세상에 쉬운 에베레스트는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2. 잊을 수 없는 일화들
힐러리는 언제나 겸손했다.
그는 등정의 영광을 동료 텐징과 나누며 “진짜 주인공은 그”라 말했다.
이 태도 덕분에 그는 네팔 사람들에게 ‘영웅’이 아니라 ‘벗’으로 기억되었다.
엄홍길에게는 동료애가 빛나는 이야기가 있다.
동료 박무택이 안나푸르나에서 조난되었을 때,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했다.
또 마지막 16좌를 오를 때는 히말라야에서 잃은 11명의 영정을 들고 올라 정상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 순간 “이제야 빚을 갚았다”고 말했다.
3. 산에서 사람으로
두 사람은 정상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힐러리는 히말라야 트러스트를 세워 네팔에 학교와 병원, 공항을 세웠다.
또 남극 탐험에도 도전해, 아문센 이후 최초로 차량으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그는 끝없는 도전의 상징이었다.
엄홍길 역시 엄홍길 휴먼재단을 세워 네팔에 수십 개의 학교를 건립했다.
그는 “내가 산에서 얻은 건 결국 사람”이라며 교육 지원에 평생을 바쳤다.
정상을 향한 열정은 이제 아이들의 미래로 이어졌다.
4. 비교표
구분 | 엄홍길 | 에드먼드 힐러리 |
---|---|---|
국적 | 대한민국 | 뉴질랜드 |
대표 업적 | 히말라야 16좌 완등 |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1953) |
등정 배경 | 3수 끝에 정상, 동료 잃은 아픔 극복 | 양봉업자 출신, 텐징과 함께 인류 최초 기록 |
대표 일화 | 동료 시신 수습, 영정 들고 마지막 정상 | 텐징과 영광을 나눈 겸손, 남극 탐험 |
사회적 활동 | 네팔 학교 건립, 휴먼재단 운영 | 셰르파 지원, 히말라야 트러스트 설립 |
철학 | “산은 또 다른 나 자신” | “정복이 아닌 허락” |
이미지 | 국민적 영웅, 봉사의 아이콘 | 인류의 탐험가, 네팔의 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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