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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

엄홍길대장과 에드먼드 힐러리 - 히말라야를 넘은 두 사람

by I watch Trends. 2025.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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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인간에게 언제나 도전과 신비였다. 누군가는 그 앞에서 무릎 꿇었고, 누군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정상을 딛고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한국의 엄홍길대장,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두 산악인의 삶은 ‘정상’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그 발자취에는 도전과 나눔이 함께 담겨 있다.

애드먼드 힐러리 (뉴질랜드 지폐) / 엄홍길

1. 정상에 선 순간

1953년, 힐러리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그는 원래 뉴질랜드 시골의 평범한 양봉업자였다.

그러나 끝내 세계사의 한 장면에 이름을 남겼다. 정상에 선 뒤 남긴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에베레스트가 우리를 허락한 것이다.

수십 년 뒤, 엄홍길은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6좌를 모두 오르며 신화를 세웠다.

그는 무려 세 번 도전 끝에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실패와 좌절을 딛고 성공했기에, 그 정상은 누구보다 값졌다.

그는 “세상에 쉬운 에베레스트는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2. 잊을 수 없는 일화들

힐러리는 언제나 겸손했다.

그는 등정의 영광을 동료 텐징과 나누며 “진짜 주인공은 그”라 말했다.

이 태도 덕분에 그는 네팔 사람들에게 ‘영웅’이 아니라 ‘벗’으로 기억되었다.

엄홍길에게는 동료애가 빛나는 이야기가 있다.

동료 박무택이 안나푸르나에서 조난되었을 때,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시신을 수습했다.

또 마지막 16좌를 오를 때는 히말라야에서 잃은 11명의 영정을 들고 올라 정상에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그 순간 “이제야 빚을 갚았다”고 말했다.

3. 산에서 사람으로

두 사람은 정상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힐러리는 히말라야 트러스트를 세워 네팔에 학교와 병원, 공항을 세웠다.

또 남극 탐험에도 도전해, 아문센 이후 최초로 차량으로 남극점에 도달했다.

그는 끝없는 도전의 상징이었다.

 

엄홍길 역시 엄홍길 휴먼재단을 세워 네팔에 수십 개의 학교를 건립했다.

그는 “내가 산에서 얻은 건 결국 사람”이라며 교육 지원에 평생을 바쳤다.

 

정상을 향한 열정은 이제 아이들의 미래로 이어졌다.

4. 비교표

구분 엄홍길 에드먼드 힐러리
국적 대한민국 뉴질랜드
대표 업적 히말라야 16좌 완등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1953)
등정 배경 3수 끝에 정상, 동료 잃은 아픔 극복 양봉업자 출신, 텐징과 함께 인류 최초 기록
대표 일화 동료 시신 수습, 영정 들고 마지막 정상 텐징과 영광을 나눈 겸손, 남극 탐험
사회적 활동 네팔 학교 건립, 휴먼재단 운영 셰르파 지원, 히말라야 트러스트 설립
철학 “산은 또 다른 나 자신” “정복이 아닌 허락”
이미지 국민적 영웅, 봉사의 아이콘 인류의 탐험가, 네팔의 벗

5. 마무리하며 

두 사람은 국적도 시대도 달랐지만, 산은 인간을 시험하고 성장시킨다는 진리를 몸소 보여주었다.

실패에도 다시 도전했던 용기, 정상의 영광을 나누려 했던 겸손, 그리고 산에서 얻은 영광을 사람들에게 돌려준 헌신.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한 등반기가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교과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