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 출간된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 소설에서 이휘소 박사는 실명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세계적인 핵물리학자’, ‘귀국 직전 갑작스러운 사망’,
‘한국의 핵개발 참여 여부’ 등 현실의 이휘소와 너무나 유사한 인물이 중심축으로 나온다.
“그는 한국의 핵개발을 돕기 위해 귀국하려 했고, 미국은 그를 암살했다.”
놀랍게도 독자들은 이 가설에 열광했다.
실제 정치적 문맥 속에서 미국의 핵 독점주의, 한미관계의 불균형 등이 설득력 있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1. 이휘소와 아인슈타인, 천재의 두 얼굴
누군가 물었다.
“한국에도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가 있었나요?”
이 질문에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이휘소 박사입니다.”
이휘소박사의 머릿속에 이론의 우주를 짓던 조용한 수학자, 물리학자였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을 뒤흔든 생각하는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였다.
두 사람은 다른 시대에 살았지만, 현대 물리학을 만든 두 개의 축처럼 우리 앞에 나란히 놓인다.
2. 둘 다 천재였다, 방식은 달랐다
아인슈타인은 독일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공부하고,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계 과학자다.
1905년, 그는 무려 26살에 ‘광양자 가설’, ‘브라운 운동’,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하며 단숨에 세상을 바꿨다.
이휘소박사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화학과를 거쳐 미국 UC버클리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고,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 시카고대학,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활약했다.
아인슈타인은 직관과 상상력으로 혁명가처럼,
이휘소는 논리와 계산으로 설계자처럼 움직였다.
3. 아인슈타인의 생각 vs 이휘소의 계산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확률이 아닌 질서와 원인을 중시했다.
이휘소는 수천 장의 계산을 통해 GIM 메커니즘을 제안했고, 이는 오늘날 표준모형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이휘소가 살아 있었다면, 그 상은 분명 나와 함께 했을 것이다.”
– 셸던 글래쇼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4. 한 명은 영웅이 되었고, 한 명은 질문이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아이콘이 되었지만,
이휘소는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조명되었다.
1977년, 미국 뉴저지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그는 겨우 마흔두 살이었다.
실제보다 더 강렬하게, 한국 과학계의 ‘이루지 못한 꿈’이란 상징으로 남게 된 것이다.
5. 이휘소박사 vs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항목 | 이휘소 박사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출생 | 1935년 서울 | 1879년 독일 울름 |
전공 | 입자물리학 | 상대성 이론, 광양자 |
대표 업적 | GIM 메커니즘, 표준모형 정리 | 특수·일반상대성이론 |
연구 방식 | 계산 중심, 정밀한 수식 | 직관 중심, 사고 실험 |
사망 | 1977년, 교통사고 (향년 42세) | 1955년, 자연사 (향년 76세) |
인지도 | 사후 인지, 학계 중심 | 전 세계적 과학 아이콘 |
5. 마무리하며
아인슈타인과 이휘소.
한 사람은 법칙을 바꾸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완성했다.
이휘소는 단지 '한국의 아인슈타인'이 아니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걷던 조용한 천재였다.
그의 이름은 여전히 논문 속에, 젊은 과학자들의 꿈속에 살아 있다.
저는 소설은 소설일 뿐 진실은 알 수 없다.
단지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이 진정으로 대우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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