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이나모리 가즈오와 한국의 정주영회장.
한 사람은 “경영은 철학이다”라며 인간 존중을 강조했고,
다른 한 사람은 “해봤어?”라는 말로 불가능을 현실로 바꿨습니다.
철학과 실행, 이 두 단어가 두 거인의 삶을 요약합니다.

1. 가난한 소년에서 거인으로
이나모리는 교토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병약한 아이였습니다.
공부 성적도 뛰어나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결국 가고시마대학 응용화학과에 진학했습니다.
1959년, 28세의 나이로 교세라를 세웠습니다.
“작은 세라믹 회사”로 시작한 교세라는 이후 세계적인 전자·통신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정주영회장은 강원 통천의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소 판 돈을 들고 집을 나와 서울로 올라와 막노동을 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항상 “크게 해 보겠다”는 꿈을 품었고, 결국 현대건설을 세웠습니다. 현대는 곧 조선, 자동차, 중공업으로 뻗어나가며 한국 산업화의 주역이 됩니다.
2. 철학으로 경영하다 vs 행동으로 돌파하다
이나모리는 늘 강조했습니다.
“기업의 목적은 단순히 이윤이 아니라, 전 직원의 행복과 사회 기여다.”
그는 아메바 경영이라는 독창적 방식을 고안했습니다.
조직을 작은 단위로 나눠 자율과 책임을 주고, 모두가 경영에 참여하게 만든 것이지요. 이 방식은 일본항공(JAL)의 기적 같은 회생에도 쓰였습니다.
정주영회장은 다르게 접근했습니다. 그의 철학은 단순했습니다.
“해봤어?”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면, 오히려 그는 더 과감히 도전했습니다. 울산에 세계 최대 조선소를 세운 일화는 전설입니다.
투자자에게는 존재하지도 않는 조선소 그림을 보여주며 자금을 끌어왔고, 끝내 세계 1위 조선 강국의 길을 열었습니다.
3. 위기의 순간
2010년, 일본 정부는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을 살려달라며 이나모리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는 무보수로 회장직을 맡고, 직원들과 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현장에 밀착했습니다.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고 윤리경영을 강화해 단 2년 만에 JAL을 다시 흑자로 돌려세웠습니다.
정주영회장도 수많은 위기를 돌파했습니다.
외국 전문가들이 “한국은 조선소를 지을 능력이 없다”라고 단언했을 때, 그는 “해보면 된다”는 집념으로 강행했습니다. 결국 울산 조선소는 완공되었고, 현대는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4.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이나모리는 기업을 직원과 사회의 공동체로 보았습니다.
그는 “경영 판단은 인간으로서 옳은가”라는 기준으로 내렸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경영은 항상 윤리와 도덕을 동반했습니다.
정주영회장은 기업을 국가 발전의 도구라 여겼습니다.
그는 “현대가 잘돼야 나라가 산다”는 신념으로 고속도로, 조선, 자동차 산업을 밀어붙였습니다.
그의 기업관은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적 목표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5. 두 거인이 남긴 유산
이나모리는 교세라, KDDI, 부활한 일본항공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아메바 경영은 전 세계 경영학 교과서에 실릴 만큼 독창적입니다.
정주영회장은 현대그룹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남겼습니다.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현대건설은 지금도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입니다. 그의 “하면 된다” 정신은 여전히 한국 사회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이나모리 가오즈vs 정주영회장
구분 | 이나모리 가즈오 | 정주영 |
출신 | 일본 교토, 가난한 집안 | 한국 강원 통천, 농가 출신 |
대표 기업 | 교세라, KDDI, 일본항공 회생 | 현대건설, 현대조선, 현대자동차 |
경영 철학 | 경영은 철학, 인간 존중 | 하면 된다, 도전 정신 |
위기 대응 | JAL 기적의 회생 | 조선소 건립, 불가능 프로젝트 완수 |
기업관 | 직원·사회 공동체 | 국가 발전의 도구 |
남긴 유산 | 아메바 경영, 윤리경영 | 현대그룹, 산업화 상징 |
맺음말
이나모리 가즈오는 철학으로 사람을 세운 경영자였고,
정주영회장은 실행으로 역사를 바꾼 개척자였습니다.
방식은 달랐지만, 두 사람은 공통적으로 “기업은 사회와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철학과 실행, 두 거인의 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