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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선님과 마타하리 - 비밀을 품은 두 여성

by I watch Trends. 2025.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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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늘 무대 위의 주인공만을 비춥니다.
그러나 그 뒤편에는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인물들이 존재합니다.
어떤 이는 조국을 위해 숨어 활동했고, 또 다른 이는 화려한 무대에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20세기 초, 서로 다른 대륙에서 두 여인이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한 사람은 일제강점기 조선의 독립운동가 엄기선님,
다른 한 사람은 제1차 세계대전 유럽의 무희 마타하리
 
엄기선은 조용히 그림자 속에서 독립운동을 이어간 ‘숨은 영웅’이었고,
마타하리는 온 세상의 시선을 끌었으나 결국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남깁니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그들을 기억해야 할까요?
 

엄기선님 / 마타하리

1. 그림자 속의 독립운동가, 엄기선님

1940년대, 일본 헌병들이 거리를 순찰하던 때. 한 여성이 손에 쥔 작은 종이쪽지를 품 속 깊이 숨기고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 쪽지는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독립운동 자금과 연락망을 이어주는 비밀 암호였습니다. 그녀가 바로 엄기선님입니다.

엄기선은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었지만, 독립군 조직의 혈관과 같은 ‘연결자’ 역할을 했습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덜 주목받는다는 점을 역이용했으나, 들키면 곧바로 체포와 고문, 죽음이 기다렸습니다.

그녀의 기록은 많지 않지만, 무명의 희생이 있었기에 독립운동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총 대신 종이를, 무기 대신 발걸음을 들고 싸운 인물이었습니다.

이름 없는 여성들의 조용한 땀방울이 모여 독립운동의 뿌리를 지탱했던 것입니다.

 

2. 무대 위의 여인, 마타하리

같은 시기 유럽, 파리의 극장. 베일을 벗어 던지고 관능적인 춤을 추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마타하리, 말레이어로 ‘태양의 눈’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녀는 불행한 결혼을 뒤로하고 파리로 건너와 동양풍 무희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정치가와 군 장교들이 그녀의 무대에 매혹되었고, 그녀는 사교계의 여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그림자는 그녀의 삶을 뒤바꾸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 양측 모두 그녀를 첩보원으로 의심했습니다.

실제로는 과장된 혐의였다는 주장도 많습니다.

하지만 패전의 책임을 돌릴 희생양이 필요했던 프랑스는 그녀를 선택했고, 1917년 총살형에 처했습니다.

그 순간 마타하리는 화려한 무희에서 ‘세기의 스파이’라는 아이콘으로 변모했습니다.

3. 닮은 점과 다른 길

공통점: 엄기선님과 마타하리 모두 비밀과 정보의 경계에서 살아갔습니다.

여성이라는 위치는 때로는 활동을 가려주는 보호막이 되었지만, 발각되면 더 큰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비극적 결말을 맞았습니다.

 

차이: 엄기선님은 조국 독립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위해 살았지만,

마타하리는 화려한 삶과 사랑을 좇다 전쟁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출발선이 달랐기에 그들의 기억 또한 다르게 남아 있습니다.

 

 

두 인물의 시대·정체성·활동·결말 비교
구분 엄기선님 마타하리
시대·배경 일제강점기 조선 제1차 세계대전 유럽
정체성 독립운동가 무희, 첩보 혐의자
활동 연락·자금 전달, 은밀한 지원 상류층 접촉, 군사 정보와 연관
결말 해방 전 별세 1917년 총살
평가 숨어 있던 애국자 전쟁의 희생양, ‘스파이’의 상징

4. 마무리하며..

엄기선님은 이름도 빛나지 못한 채 역사의 그늘 속에 묻혔고,

마타하리는 과장된 이야기 속에서 전 세계의 유명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여성의 삶은 공통적으로 시대가 여성에게 강요한 잔혹한 역할을 드러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희생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역사 속 오해와 진실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는 우리의 노력이야말로, 두 여인을 다시 살아 있게 만드는 가장 진실한 길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