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그라다 파밀리아로 신의 집을 짓던 가우디가,
어느 날 조선의 광화문 앞에 선다.
그는 처음엔 멈칫한다.
장식은 없다. 첨탑도, 곡선도, 스테인드글라스도 없다.
그런데… 묘하게도 위엄이 있다. 땅을 뚫고 솟은 듯한 기세가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철학이 서 있다.
그는 묻는다. “왜 이렇게 단순한가?”
그에 대한 답은 500년 전 조선의 철학자 정도전이 남겼다.

“건축은 권력의 과시가 아니라, 민심과의 거리다.”
“높이보다 중심이 중요하고, 장식보다 도리가 먼저다.”
1. 정도전, 그는 궁궐을 설계한 철학가였다
1395년. 조선 개국 3년째. 새 도읍 한양에 경복궁을 짓기 시작했다.
왕명에 따라 공사는 시작됐지만, 설계 철학은 정도전의 것이었다.
그는 유학자였지만, 정치가였고, 설계자였다.
무엇보다 그는 조선이라는 나라의 ‘형체’를 직접 디자인한 자였다.
- 궁궐은 ‘왕이 백성을 덕으로 다스리는 공간’이어야 했다.
- 궁궐은 자연과 싸우지 않고, 자연을 따라 배치되었다.
- 북악산 아래, 한강을 마주 보고, 좌청룡 우백호를 따라
- ‘길’과 ‘좌우 대칭’을 갖춘다.
그 중심에 광화문이 있다. 외형은 담백하지만, 그것은 유약함이 아니다.
절제 속의 권위, 조용한 힘이 깃든 문이다.
2. 가우디와 정도전, 다른 길을 걷다
가우디는 곡선과 색채로 신의 세계를 그렸다.
정도전은 직선과 배치로 유교의 도리를 그렸다.
가우디의 건축은 하늘을 찔렀고,
정도전의 건축은 땅에 깊이 박혔다.
그 둘은 닮지 않았지만, 공통점이 있다.
건축을 권력의 도구로 보지 않았다는 점.
그들에게 건축은 예술이자 선언이었고, 공간이자 철학이었다.
3. 광화문은 말한다
광화문은 “조선의 정문”이었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조선이 꿈꿨던 이상 정치의 선언문이었다.
화려함은 없지만, 담백함이 철학을 만든다.
가우디는 어쩌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신을 위해 집을 지었고, 그는 백성을 위해 나라를 지었구나.”
4. 가우디 vs 정도전 – 건축 철학 비교표
목적 | 신을 향한 경외심의 표현 | 유교적 정치질서의 구현 |
자연의 해석 | 자연의 형태를 그대로 모사 | 자연과의 조화를 철학적으로 배치 |
형태 | 곡선 중심, 유기적 구조 | 직선 중심, 대칭 구조 |
장식성 | 화려하고 예술적인 디테일 | 절제된 선과 상징 중심 |
권위의 표현 | 신성의 경이로움 | 덕의 통치와 중용의 기품 |
공간의 상징 | 신과 인간 사이의 신비한 연결 | 임금과 백성 간의 도리와 소통 |
이처럼 광화문은 단지 돌과 나무로 지어진 문이 아니다.
그것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상에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였다.
“우리는 권력이 아니라 도리로 다스린다.”
그 조용한 선언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광화문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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