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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

김마리아와 말라라 유사프자이 이야기 -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꾼다.!

by I watch Trends. 2025.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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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새벽, 책상 위에 펜 하나와 교과서 한 권이 놓여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이 풍경이, 누군가에겐 생명을 걸고 지켜야 했던 꿈이었다면 믿기시나요?
100년 전 조선, 그리고 현재의 파키스탄.
이 두 시간과 공간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자라서 배울 수 없었던 시대에, 배우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죠.

김마리아와 말라라 유사프자이입니다.
 
 

김마리아 / 말라라 유사프자이

1.  불꽃처럼 살다 — 김마리아의 이야기

1919년 3월 1일. 서울 정동.
총칼로 둘러싸인 조선총독부 앞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여성 유학생 리더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화학당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학하며 조선유학생회를 만들고, 3.1운동을 조직한 인물, 바로 김마리아였습니다.
그녀는 체포되자마자 고문실로 끌려갔습니다.
무려 8시간 동안 채찍과 고문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평생 병을 안고 살아야 했죠.
일본 형사는 조롱하듯 말했습니다.
“여자가 감히 무얼 안다고 이런 짓을 하느냐?”
그러자 김마리아는 피투성이가 된 채 말했습니다.
“여자가 아니더라도, 나는 조선인입니다. 조선이 살아야 우리가 배울 수 있습니다.”
 
고문 후유증으로 병보석으로 석방된 그녀는 다시 펜을 들었습니다.
그녀는 조선여자교육회와 근우회를 조직하며 여성의 권리를 외쳤고, 무엇보다 "여자도 배워야 한다"는 신념을 세상에 퍼뜨렸습니다.

2. 총알보다 강한 펜 — 말라라 유사프자이

2012년, 파키스탄 스와트 계곡.
15세 소녀 말라라 유사프자이는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 탈레반 무장세력의 총구 앞에 섭니다.
“말라라가 누구냐?”
총을 든 남성은 그렇게 외쳤고, 잠시 후 총알이 그녀의 머리와 어깨를 뚫었습니다.
그녀의 잘못은 단 하나였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어요.”
말라라는 이미 11살 때부터 BBC에 일기를 연재하며, 탈레반이 여학교를 폐쇄하는 현실을 고발해 왔습니다.
그녀의 글은 단순한 일기가 아닌, 펜으로 쓴 투쟁이었습니다.
영국으로 이송되어 목숨을 건진 그녀는 유엔에서 세계인을 향해 말합니다.
 
“그들은 나를 침묵시키려 했지만, 한 발의 총알이 수백만 개의 목소리를 깨웠습니다.”
 
이후 말라라 재단(Malala Fund)을 세운 그녀는 세계 여성의 교육을 지원하며, 17세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옥스퍼드대에서 정치·철학·경제를 전공하고 졸업한 그녀는 지금도 교육 현장을 누비며 배움의 기회를 나누고 있습니다.

3.  김마리아와 말라라, 시대를 넘어 마주보다

한 사람은 일제의 고문실에서,
또 다른 한 사람은 탈레반의 총구 앞에서,
같은 말을 외쳤습니다.
 
“나는 배우고 싶다.”
 
그리고 그 말은 단지 한 사람의 외침이 아니라,
억압받은 여성들,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의 대신 울려 퍼진 목소리였습니다.

4.  김마리아 vs 말라라 유사프자이

출생1891년, 조선 평양1997년, 파키스탄 스와트
활동 시기1910년대~1940년대2008년~현재
투쟁 배경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여성 교육운동탈레반의 여성 억압, 교육 금지
대표 일화3.1운동 주도, 8시간 고문 후에도 투쟁탈레반에 총격, 생존 후 유엔 연설
주요 업적조선여자교육회·근우회 창립말라라 재단 설립, 노벨 평화상 수상
학문이화학당 졸업, 일본 유학옥스퍼드대 졸업 (PPE 전공)
상징성한국 여성 독립운동과 교육권 투쟁의 상징세계 여아 교육과 인권의 아이콘

5.  마무리하며

책 한 권, 펜 한 자루.
그것을 들고 싸운 두 여성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교육의 기회는,
누군가의 피와 용기로 지켜낸 결과가 아닐까요?
김마리아와 말라라는 말합니다.
“지식은 힘이고, 배움은 해방이다.”
 
그들의 길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 곧 우리가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