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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

조선의 골목을 누빈 신윤복, 현대의 담장을 물들인 뱅크시

by I watch Trends. 2025.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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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신윤복의 풍속화' 전시를 보고 나오는 길,
옆에 있던 중년 신사가 이렇게 말했다.
“이 양반, 요즘으로 치면 뱅크시야. 조선의 뱅크시.
 
신윤복과 뱅크시의 관계는..정말 그럴까?
시대도, 화풍도 다른 두 화가가… 닮았다고?
 

뱅커시 작품 / 신윤복 미인도

1. 신윤복, 붓으로 조선을 엿보다

신윤복은 조선 후기 화원이자 풍속화의 대가다.
보통 조선의 그림이라 하면 의례적인 궁중화자연 풍경화를 떠올리지만, 신윤복은 달랐다.
그는 사람을 그렸다. 그것도 양반이 아닌, 골목과 주막의 평범한 사람들을...
대표작 단오풍정을 보자. 여인들이 물가에서 목욕을 하고 있다.
한 여인은 물장구를 치고, 한 여인은 속적삼을 살짝 걷어올렸다.
당시로선 대담한 표현이었다. 계급 질서, 성적 금기를 건드리는 위험한 시선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렸다.  익명으로.

단오풍경

 
일화에 따르면, 신윤복은 당시 화원 조직에서 퇴출당할 뻔했지만, 그의 그림은 민간에선 인기가 많았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몰래 모사했고, “한양에 윤복이 또 뭘 그렸대” 하는 입소문이 돌았다.

2. 뱅크시, 스프레이로 세상을 찌르다

시간은 수백 년을 건너뛴다.
장소는 영국. 어느 날, 브리스톨의 낡은 건물 벽에 원숭이 가면을 쓴 국회의원이 등장한다.
사람들은 경악했고, 언론은 달궈졌고, 화가는 침묵했다. 그림 아래 적힌 서명이 단 하나였다. “Banksy”.
뱅크시는 자신의 정체를 공개하지 않는다. 얼굴도, 이름도 없다. 하지만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예술가다.
2005년, 팔레스타인 분리장벽에 그린 풍선을 든 소녀는 분쟁과 희망을 동시에 말했고,
2018년 경매장에 나온 그의 그림 ‘Girl with Balloon’은 낙찰 직후 자동 파쇄되었다.

풍선과 소녀

 

“예술은 소유되는 순간 죽는다.” 그의 메시지는 강렬했고, 충격적이었다.

3. 둘 다 거리에서 시작했다

신윤복이 그린 건 조선의 골목이고, 뱅크시가 그린 건 현대의 벽이다.
한 명은 붓을 들었고, 한 명은 스프레이를 쥐었다.
그러나 둘 모두 ‘거리’에서 사회를 바라봤다.
 
신윤복은 양반의 첩을 훔쳐보는 시선을 그렸고,
뱅크시는 전쟁터에 꽃다발을 던지는 청년을 그렸다.
둘 다 우리가 외면하던 장면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신윤복의 작품이 후세에 와서야 인정받았듯,
뱅크시의 작품도 미술관이 아닌 ‘담벼락’에서 혁명을 꿈꾼다.

4. 신윤복 vs 뱅크시 

시대조선 후기 (18세기)현대 (1990년대~현재)
주요 매체한지에 채색화 (풍속화)벽화, 스프레이, 설치미술
주제서민의 삶, 사랑, 욕망, 계급 풍자전쟁, 소비주의, 권력 풍자, 평화
작품 특징사실적 묘사, 유머, 세속적 시선간결한 메시지, 풍자, 시위적 표현
정체 공개 여부부분적 익명성완전한 익명
평가사후 재조명, 대중성과 예술성 겸비논란과 천재성 공존, 세계적 영향력

 

5. 상상해보자: 신윤복이 오늘날 살아 있다면?

어느 날 아침, 서울 종로의 낡은 벽면에 익숙한 여인의 뒷모습이 나타난다.
물가에서 적삼을 걷어올리는 여인, 그 뒤엔 누군가 붓으로 이렇게 적었다.
"이 여인도 사랑했고, 두려워했고, 우리와 같았다."
누가 그렸을까? 신윤복일까, 뱅크시일까?
 
아니,그건 아마도...
 
 우리가 외면해온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예술가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ps) 2013년 뉴욕센트럴파크에서  본인의 작품 12억원에 팔리넌 작품을  60달러에 거리에 내놓고 팔았던 뉴스가 있었습니다.
8작품이 팔렸다고하네요..^^ 
     
     분명히 우리주변에도 뱅크시같은 작품이 있습니다.!!!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