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기의 농민 지도자 전봉준,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아이콘 체게바라.
시대도, 대륙도 달랐지만 두 인물은 모두 부당한 권력에 맞서 민중의 삶을 바꾸고자 싸웠다.
혁명이라는 이름 아래, 그들의 선택과 죽음은 지금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1. 고부의 봄, 분노로 피어나다
1894년 봄, 조선 전라도 고부.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마을에서 백성들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고부 군수가 세금 대신 곡식을 다 가져간다 합니다."
"가마니 하나도 안 남았소."
고부 군수 조병갑은 민심을 짓밟고, 뇌물과 사치를 일삼았다.
이에 분노한 동학 교도 전봉준은 먼저 온건한 방법을 택했다.
탄원서 제출, 항의 방문, 하지만 결과는 모욕과 처벌이었다.
그는 결심한다.
“이제, 말로 되지 않으니, 백성과 함께 일어나야 한다.”
2. 오토바이 위의 의대생, 남미의 진실을 보다
그로부터 60년 뒤. 아르헨티나 출신의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는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로 중남미를 여행한다.
여정에서 그는 빈민가와 노동자의 현실을 목격한다.
페루의 나환자 병동에서 환자들의 발을 씻기고, 함께 식사하는 게바라. 그는 친구에게 말한다.
“이건 병의 문제가 아니다. 이건 구조의 문제야. 혁명이 필요해.”
그때부터 그는 단순한 의사가 아닌, 고통받는 사람들의 전사가 되기로 한다.
3. 농민이 주인 되는 세상, 그 첫 걸음
전봉준은 마침내 동학농민군을 조직한다.
고부성을 점령하고, 곡식 창고를 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관아는 백성의 자치공간이 되었고, 부패한 관리들은 처벌당했다.
그는 외쳤다.
“보국안민! 제폭구민!”
나라를 도우며 백성을 편안히 하고, 폭정을 제거하여 민중을 구한다는 뜻.
그의 혁명은 단지 저항이 아니라 농민의 존엄을 회복하는 실험이었다.
4. 산으로 간 의사, 총을 든 이상주의자
한편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 형제와 함께 쿠바 산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정부군과의 치열한 게릴라 전투 속에서도 그는 전쟁보다 인간의 존엄을 먼저 생각했다.
포로로 잡힌 병사가 "저도 농민의 자식입니다…"라며 떨자, 그는 총을 내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총을 들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을 위해 싸우고 있어요.”
혁명은 쿠바를 바꾸었다. 농민과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질서.
하지만 게바라는 권력의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다시 가난한 이들을 위해 볼리비아로 떠난다.
5.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두 사람
전봉준은 공주 전투에서 패배하고 붙잡힌다. 군법회의에서 그는 조용히 말한다.
“백성을 위하여 움직인 것이 죄라면, 나는 죄인일 뿐이다.”
그는 교수형에 처해진다.
백성들은 그의 시신을 몰래 수습해 장사를 지냈고, 후일 그를 ‘녹두장군’이라 부르게 된다.
체 게바라는 볼리비아에서 포위된 끝에 체포된다.
정부군이 총을 겨누자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쏘지 마라. 나는 단지 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은 세계의 상징이 되었다.
6. 실패로 끝난 혁명, 그러나 꺼지지 않은 불꽃
전봉준의 동학농민운동은 실패로 끝났지만, 의병운동과 3.1운동의 정신적 뿌리가 되었다.
그는 민중 저항의 ‘시작’이었고, ‘백성이 나라다’라는 개념을 처음 외친 사람이다.
체 게바라는 죽었지만 그의 얼굴은 저항과 자유의 상징이 되었다.
티셔츠, 깃발, 거리의 벽화에서 그는 아직도 젊은 얼굴로 웃고 있다.
그들은 나라를 바꾸진 못했지만, 사람들의 생각을 바꿨다.
그것은 어쩌면 더 오래 남는 혁명일지 모른다.
7. 전봉준과 체 게바라 비교표
항목 | 전봉준 | 체 게바라 |
---|---|---|
출생·사망 | 1855년 ~ 1895년, 조선 | 1928년 ~ 1967년, 아르헨티나/쿠바 |
출신 배경 | 동학 교도, 농민 출신 | 의대생, 중산층 가정 |
혁명의 계기 | 고부 군수의 수탈과 백성 고통 | 중남미 빈곤층 목격 |
주요 활동 | 동학농민운동, 관아 점령, 탐관오리 처벌 | 쿠바 혁명, 볼리비아 게릴라 |
사상·가치 | 백성이 곧 하늘, 제폭구민 | 민중 해방, 반제국주의 |
죽음 | 군법회의 후 처형 | 볼리비아에서 총살 |
사후 영향 | 항일운동의 정신적 기반 | 세계 반체제 운동의 아이콘 |
공통점 | 민중 중심, 혁명적 실천, 사후에 더 큰 상징성으로 계승 |
얼마전 우리도 국가를 상대로, 대통령을 상대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진짜 나라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그 물음은 시대를 초월해 지금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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