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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

김부식과 사마천 – 권력과 진실 사이에서 역사를 쓴 사람들

by I watch Trends. 2025.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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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을 뒤집으면, 역사란 기록한 자의 용기와 관점이기도 하다.
 
고려의 김부식
중국 한나라의 사마천.
 
시대도, 나라와 문화도 달랐지만,
이들은 모두 역사의 책임을 짊어진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진실과 권력 사이에서 갈등하며 기록을 남겼다.
 

삼국유사 / 김부식 / 사마천 / 사기

 

1. 김부식, 왕의 명으로 역사를 쓰다

김부식은 고려 인종의 총애를 받던 고위 관료였다.
학문과 글재주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1145년 왕의 명령을 받아 『삼국사기』 편찬을 시작한다.
고려의 정통성과 유교적 이념을 확립하기 위한 국가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에게도 논란의 그림자는 있었다.
바로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이다.
묘청은 풍수와 불교를 바탕으로 서경(지금의 평양)을 도읍으로 삼아 북진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부식은 이를 반대하며 왕도를 지키는 입장에서 강하게 반박했다.
결국 1135년, 묘청은 군사를 일으켰고 김부식은 왕명을 받아 진압군의 총사령관으로 나섰다.
 
그는 대대적인 전투 끝에 서경을 함락시켰고, 묘청은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놀라운 점은 이토록 중요한 사건이
 
『삼국사기』에 단 한 줄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진압한 대규모 반란.
왜 그는 이 기록을 지웠을까?
 
그 이유에 대해 많은 학자들은 “정권의 정당성을 해치는 민감한 내용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라고 본다.
 
"진실보다 체제의 안정을 택한 김부식".
 
그는 유교적 질서 속에서 역사란 국가를 위한 도구이자,
후손이 따라야 할 ‘정론’이라 여겼다.

2. 사마천, 궁형을 견디고 붓을 들다

사마천의 생애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처절한 기록의 여정이다.
그는 아버지 사마담의 유지를 이어 천하의 연대기를 쓰겠다는 사명을 품고 살아갔다.
하지만 운명은 그를 가혹하게 시험했다.
기원전 99년, 한나라 장군 이릉이 흉노와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포로가 된다.
무제는 이릉을 배신자로 간주했으나, 사마천은 그가 최선을 다한 장수임을 믿고 변호한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
사마천은 황제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는다.
그는 사형 대신 궁형(거세형)을 택한다.
이는 당대 유학자에겐 죽음보다 치욕이었다.
 
사마천은 이렇게 남긴다:
“죽음을 택하면 『사기』는 미완이다.
나는 살아남아 끝내 써야 한다.”
 
굴욕과 고통 속에서도 그는 붓을 들었다. 감옥에서 나와 천대를 받으면서도 13년 동안 『사기』를 집필한다.
그의 방은 비둘기와 쥐가 드나드는 곡물 창고 옆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거세된 환관’이라 부르며 업신여겼지만, 그는 기록을 멈추지 않았다.

3. 두 역사서, 두 시선

『삼국사기』와 『사기』는 모두 각 나라의 초석을 다진 역사서다.
하지만 그 태도는 전혀 다르다.
김부식은 『삼국사기』에서 고구려 주몽, 백제 온조, 신라 박혁거세 등의 건국신화를 유교적 질서에 맞춰 정리했다.
신비한 탄생이나 초인적 능력은 간소화되거나 삭제되었다.

민족주의적 요소나 지역주의도 배제되었다.
이성적이고 정치적인 역사를 원했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역사의 인물을 영웅과 실각자, 도적과 시인까지도 동등하게 기록했다.
‘열전’이라는 독창적인 구성은, 개인 한 명 한 명의 삶이 곧 역사의 주체임을 보여준다.
항우의 비극, 공자의 고뇌, 심지어 자살한 시인 굴원의 삶까지도 기록되었다.

4. 기록은 권력인가, 진실인가

김부식은 역사를 통해 고려 왕조의 정통성을 강화하고자 했다.
사마천은 그 반대로 왕조의 그림자까지도 기록하려 했다.
 
두 사람 모두 권력 가까이에 있었지만, 그 권력과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한 선택은 달랐다.
 
김부식에게 기록은 이상적인 통치의 틀이었다.
사마천에게 기록은 인간과 진실의 궤적이었다.
 
한 사람은 침묵을 택했고,
다른 한 사람은 고통 속에 목소리를 남겼다.

5. 김부식 vs 사마천 비교표

시대 고려 인종기 (12세기) 한나라 무제기 (기원전 2세기)
대표 저서 『삼국사기』 『사기』
핵심 일화 묘청의 난 진압 후 기록 생략 이릉 변호 후 궁형 감수
역사관 유교 중심, 정치적 질서 중시 인간 중심, 진실 중심 서사
기록의 방식 신화와 비판 최소화 영웅·실각자 모두 기록


6.  마무리하며

김부식과 사마천은 ‘기록한다’는 같은 행동 속에서 서로 다른 신념을 살았다.
우리는 이 둘의 삶을 통해 묻게 된다.
 
“역사를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실을 지우는 일인가, 남기는 일인가.
 
그 해답은 지금도,
그리고 당신의 글에서도 이어진다.
 
우리 모두 함께  마음속에 남을 멋진 글을 작성해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