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어서 맥아더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통해 존경받고 고마움을 느끼게 해주는 장군이시다.
그러나 깉은 시대를 살았던 아이젠하워 장군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을 존재했었다.
1935년 필리핀 마닐라.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 군사 고문단의 수장으로 부임했고,
그 곁엔 조용한 참모 한 명이 따라붙었다.
그는 후일 세계사에 길이 남을 이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였다.
당시만 해도 그는 군 내부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장교였다.
맥아더는 이 젊은 참모의 재능은 높이 샀지만, 지도자로서는 부족하다고 여겼다.
실제로 그는 동료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아이크는 똑똑한 친구지만, 카리스마가 없어. 정치도 못 할 거야.”
하지만 세상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이 조용한 참모는 훗날 연합군 최고사령관으로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이끌고,
전후에는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반면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 불렸지만,
결국 트루먼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불명예스럽게 군복을 벗게 된다.

“나는 그 사람의 서류 담당이었다”
아이젠하워는 필리핀 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사람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사람이었다.”
맥아더는 늘 직접 연설문을 쓰는 대신, 아이젠하워에게 초안을 맡기곤 했다.
한 번은 장군이 연설문을 훑더니 “괜찮군”이라고 말하고 연단에 올라갔다.
아이젠하워는 연설이 끝난 뒤,
“내가 쓴 연설을 맥아더의 말처럼 들리게 만들었다는 게 내 재능”이라고 동료에게 말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둘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맥아더는 늘 무대 위의 사람이었고,
아이젠하워는 무대 뒤에서 전략을 짜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커지자, 전략가가 무대 위로 올라서야 할 때가 찾아왔다.
서로를 보는 시선, 그리고 오랜 그림자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맥아더는 태평양 전선을,
아이젠하워는 유럽 전선을 책임졌다.
둘은 군 통신망으로 공식 보고를 주고받았지만, 사적으로 연락하진 않았다.
맥아더는 아이젠하워의 급속한 출세를 못마땅해했고,
아이젠하워는 맥아더의 정치적 발언을 경계했다.
한 전우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다.
“맥아더는 아이젠하워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때 신문을 찢어버렸고,
아이젠하워는 맥아더가 트루먼과 맞서며 핵 사용을 주장할 때 눈살을 찌푸렸다.”
둘은 서로 인정하면서도,
끝끝내 함께할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백악관으로 간 참모, 퇴장한 장군
1952년, 아이젠하워는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다.
선거 운동 중 기자가 그에게 “필리핀 시절, 당신은 맥아더 장군의 보좌관이었지 않느냐?”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분은 내 상사였지만, 나는 내 길을 걸었고,
지금은 내 판단으로 미국을 이끌 준비가 되어 있다.”
반면 맥아더는 정계 진출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그가 마지막으로 대중 앞에 선 것은 의회 연설이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
그 말은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지만, 동시에 한 시대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이기도 했다.
두 리더의 조언
훗날 젊은 장교가 아이젠하워에게
“장군님, 좋은 지휘관이 되려면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사람들을 다룰 줄 아는 능력. 그것이 없다면 아무리 전략이 뛰어나도 전쟁은 질 것이다.”
이와 달리, 맥아더는
“지도자는 사랑받는 존재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따르게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대답 속에서 두 사람의 리더십 철학이 드러난다.
하나는 조율과 협력의 리더,
다른 하나는 결단과 영광의 리더였다.
맥아더 vs 아이젠하워
항목 | 더글라스 맥아더 |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
출신 학교 | 웨스트포인트 수석 졸업 | 웨스트포인트 졸업 |
초기 관계 | 상관 | 보좌관 |
리더십 스타일 | 카리스마형, 지시형 | 조율형, 협상형 |
대표 작전 | 인천상륙작전, 일본 점령 | 노르망디 상륙작전 |
정치 경력 | 대선 출마 실패 | 대통령 당선 (1953~1961) |
유명 어록 | “노병은 사라질 뿐” | “지도자는 사람을 움직이는 자다” |
맥아더와 아이젠하워.
같은 시대, 같은 전쟁을 겪었지만,
그들이 택한 길과 남긴 자취는 전혀 달랐다.
하나는 무대 위에서 빛났고,
다른 하나는 국가 전체를 조율했다.
이 둘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위기를 돌파할 리더는, 강한 결단의 장군인가?
아니면 조용한 전략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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