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건축의 흐름을 이야기할 때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콘크리트와 유리, 강철로 빚은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통해 건축을 ‘거주를 위한 기계’라 정의했다.
도시계획에서 주거, 공공건물, 가구 디자인까지 건축을 하나의 종합예술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그의 철학은 분명했다. “사람의 삶을 합리적이고 기능적으로 담아내라.”
그는 빛의 각도와 공기의 흐름, 창의 위치까지 계산하며 인간 치수 체계인 모듈러(Modulor)를 고안했다.
건축이 사람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철학의 구체화였다.
1. 파리에서 만난 제자
1950년대 초 파리. 한국에서 온 젊은 건축가 김중업님은 유럽 건축계를 뒤흔들던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 문을 두드렸다.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에 새로운 시대의 건축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말없이 도면 위 선과 면을 정리하며 그를 바라봤고,
김중업님은 현장에서 콘크리트가 예술이 되는 과정을 배웠다.
스승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빛과 그림자의 질서는 그의 건축관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2. 한국으로 돌아온 거장
귀국한 김중업님은 한국의 현실 속에 스승의 철학을 녹여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그 대표작이다.
절제된 직사각형 매스 속에서도 창과 벽, 마당과 동선은 한국의 자연과 빛을 담아내도록 설계됐다.
서양 모더니즘과 한국 전통미가 만난 작품이었다.
그의 건물은 당시 한국에서 보기 드문 콘크리트의 미학과 기능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르 코르뷔지에가 ‘기능의 논리’를 강조했다면,
김중업님은 그 위에 한국의 장소성과 정서를 덧입혔다.
3. 공통점 – 기능과 미학의 통합
두 사람은 모두 건축을 삶의 틀로 보았다.
르 코르뷔지에는 유럽 도시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김중업은 전쟁 이후 황폐해진 한국 사회에 새로운 주거와 공공공간을 제안했다.
둘 다 콘크리트를 사랑했다. 값싸고 튼튼해서가 아니라, 빛과 그림자를 담는 순수 조형의 재료였기 때문이다.
4. 차이점 – 산업화와 전통
르 코르뷔지에는 기계 문명의 속도에 맞춘 대규모 주거·도시계획을 제안하며 ‘보편성’을 지향했다.
반면 김중업은 기후·지형·문화에 반응하는 ‘지역성’을 택했다.
그래서 그의 직선과 면 사이엔 한옥의 마당감과 여백이 숨어 있다.
5. 르 코르뷔지에 vs 김중업
항목 | 르 코르뷔지에 | 김중업 님 |
---|---|---|
출생 | 1887년, 스위스 | 1922년, 대한민국 |
분야 | 건축가, 도시계획가, 디자이너 | 건축가 |
주요 업적 | 모듈러, 유니테 다비타시옹, 샹디가르 도시계획 | 주한 프랑스 대사관, 서강대 본관, 경동교회 |
건축 철학 | 기능주의, 기계미학, 보편성 | 기능+전통 융합, 지역성·장소성 강조 |
공통점 | 콘크리트의 조형성·기능성 통합, 사람을 위한 공간 추구 | |
차이점 | 산업화의 속도·표준화 | 자연·문화 맥락의 해석과 변주 |
6. 마무리 – 제자에서 창조자로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을 산업 시대의 언어로 번역했고,
김중업님은 그것을 한국의 시와 전통으로 재해석했다.
서로 다른 대륙과 문화에서 태어난 두 건축은 결국 같은 지점을 향한다.
사람을 위한 공간. 오늘 김중업의 건물을 마주하면 그 속에 스승의 그림자와, 한국적 미를 향한 제자의 고집이 동시에 보인다.
그것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이어지는 건축의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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