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웃음을 견디고 미래를 설계한 두 도시 개척자의 이야기
1. “사람이 지하를 달린다고?” — 찰스 피어슨의 황당한 제안
19세기 런던. 산업혁명으로 인구가 폭발하며 거리는 마차와 사람으로 꽉 막혔습니다.
이때 변호사이자 시정 개혁가 찰스 피어슨(1793–1862)이 전례 없는 제안을 꺼냅니다.
“지상을 비우려면, 지하에 철도를 놓아야 합니다.”
당시 여론은 차가웠습니다.
신문 만평에는 얼굴이 시커먼 승객들이 굴속을 달리는 풍자가 실렸고, 의회에서도 “비용 대비 효과가 불분명한 공상”이라는 비판이 이어졌죠. 그래도 피어슨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이 아니라, 동서 남북으로 나뉜 도시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는 사회적 연결 장치”라며 노동자 통근 시간을 줄이고 주거를 도심 밖으로 분산할 구체적 경제효과를 제시합니다.
심지어 초기 조사·설계비 일부를 사비로 보태며 책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1863년 메트로폴리탄 라인이 드디어 달리자, ‘숨막힐까’ 손수건에 향수를 뿌리고 탄 승객, 증기기관의 김을 보고 탄성을 내지르는 아이들, “지옥철”이라 비난하던 신문까지 일제히 논조를 바꿨습니다.
표는 연일 매진, 런던은 새로운 심장을 얻었습니다.
※ 피어슨은 개통 직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비전은 세계 지하철의 출발선이 되었습니다.
2. “오늘의 불편은 내일의 편리” — 양택식시장의 뚝심
한 세기 뒤, 서울도 교통정체로 신음했습니다.
버스와 택시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웠고, 출퇴근 시간은 ‘전투’였죠. 서울시장 양택식(1920–1994)은 결심합니다.
“서울에도 지하철을 놓자.”
하지만 현실은 험난했습니다. 재정 여력은 부족했고, 해외 기술·차관을 들여와야 했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 지하철이라니 사치”라는 반대도 거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을 발로 뛰었습니다.
공사로 도로가 파헤쳐지자 상인들이 항의합니다. 양택식은 시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상인들과 컵라면과 소주를 나누며 말합니다. “지금은 장사가 덜 되시겠지만, 개통되면 발길이 몰립니다. 오늘의 불편은 내일의 편리가 될 겁니다.” 회의적이던 표정이 조금씩 풀렸습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그는 장화를 신고 흙탕을 밟으며 터널 내부 배수 상태를 직접 확인합니다.
작업자와 같은 도시락을 먹고, “여러분이 파는 이 터널이 바로 서울의 동맥”이라며 격려합니다.
그 ‘동맥’은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 1호선 개통으로 현실이 됩니다.
※ 1호선은 이후 노선망의 씨앗이 되어 오늘의 서울 대중교통 체계로 확장됩니다.
3. 두 사람의 공통점과 대비
공통점: 비웃음과 반대를 견디며,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필요를 기준으로 결정을 내린 점.
피어슨은 아이디어와 설득으로,
양택식은 실행과 책임으로 길을 냈습니다.
런던은 세계 최초라는 미지의 영역을 여는 발상의 돌파였고,
서울은 자본·기술의 제약 속에서 해법을 조합하는 실행의 돌파였습니다.
4. 찰스 피어슨과 양택식시장
무대/시대 | 19세기 런던, 산업혁명 교통난 | 20세기 서울, 급속 도시화 교통난 |
핵심 역할 | 지하철 개념·정당성 제시(정치·사회 개혁가) | 정책 결단·자금·기술 조달·공사 집행(행정가) |
결정적 일화 | 의회·시민 설득, 사비 투입, 개통 첫날 매진 열기 | 상인 설득(시장 바닥 좌담), 비 오는 날 현장 점검·격려 |
장벽 | 조롱과 불신, 전례 없음, 비용 논쟁 | 재정 제약, 외자·기술 의존 논란, 공사 민원 |
성과 | 1863 메트로폴리탄 라인 개통 — 세계 최초 지하철 | 1974 서울 1호선 개통 — 한국 대중교통 체계의 출발 |
한 문장 요약 | “지하라는 새로운 차원을 도시의 길로 만들다.” | “오늘의 불편을 내일의 편리로 바꾸다.” |
5. 맺음말
피어슨은 꿈의 설계자, 양택식은 현실의 건축자였습니다.
두 사람 덕분에 우리는 매일같이 지하에서 시간을 절약하고 도시를 공유합니다.
결국 도시는, 비웃음을 견디며 미래를 본 사람들이 만든 작품입니다.
'역사를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병우와 안셀 아담스: 소나무와 요세미티가 만나다 (33) | 2025.09.26 |
---|---|
하위헌스 vs 브레게 - 시간의 과학과 예술 (45) | 2025.09.25 |
르누아르와 박수근화백 — 빛과 돌의 미학, 인간이라는 공통 화제 (43) | 2025.09.24 |
리바이 스트라우스와 코코 샤넬 ― 옷을 넘어 삶을 바꾸다 (62) | 2025.09.23 |
조르제토 주지아로 & 피터 슈라이어- 직선과 원, 두 거장의 자동차 디자인 (56) | 2025.09.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