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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

최무선과 마르코 폴로 – 발명과 여행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

by I watch Trends. 202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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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기, 세계는 뒤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는 고려가 왜구의 약탈에 시달렸고,
서쪽 유럽에서는 상인과 모험가들이 새로운 땅과 시장을 찾고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세상을 바꾼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최무선 – 화약무기로 나라를 지킨 발명가,
마르코 폴로 – 동서 문명의 다리를 놓은 여행가입니다.

 

최무선 / 마르코폴로

1.  최무선 – 화약으로 왜구를 막다

최무선의 이름이 처음 역사서에 등장한 것은 『고려사』 기록입니다.
1360년대 후반, 그는 원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화약무기(화포·화전)의 위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당시 원군이 반란군을 진압할 때, 밤하늘을 가르며 날아간 불화살이 성벽에 꽂히자,
순식간에 성문이 불길에 휩싸였다고 합니다.

귀국 후 그는 화약 제조법을 얻으려 애썼지만, 원나라는 기술 유출을 금지해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최무선은 장인 이원과 함께 삼 년간 비밀 실험을 거듭했습니다.
실패할 때마다 창고가 폭발하거나, 실험장이 불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질산칼륨 정제법을 완성했습니다.

1377년, 진포 해전.
최무선이 만든 화포 80문이 고려 수군의 판옥선에 실렸습니다.
왜구 500여 척이 강 하구를 거슬러 오르자, 그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불을 당겨라!”
화염과 굉음 속에 왜구의 배들이 불타며 가라앉았고,
이 전투 이후 왜구는 더 이상 함부로 고려 수역을 넘보지 못했습니다.

 

2.  마르코 폴로 – 쿠빌라이 칸의 사절이 되다.

 

마르코 폴로의 여정은 『동방견문록』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1271년, 17세의 그는 아버지 니콜로, 삼촌 마페오와 함께 베네치아를 떠났습니다.
실크로드를 따라 페르시아, 파미르 고원을 넘어 마침내 원나라 수도 대도(지금의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젊은 마르코를 눈여겨보았습니다.
그의 기민한 언어 습득력과 관찰력을 높이 사서 중앙아시아·남중국 등 각지의 사절로 임명했습니다.
마르코는 그곳에서 중국의 종이화폐 제도, 대운하, 도자기 산업 등을 목격했고,
이를 세세히 기록했습니다.

그가 서양에 돌아왔을 때, 유럽인들에게 아시아는 상상 속의 세계였습니다.
하지만 『동방견문록』은 그 상상을 구체적 현실로 바꾸었고,
후대 콜럼버스 같은 탐험가들에게 새로운 길을 찾을 용기를 주었습니다.

3. 닮은 점 – 낯선 것을 받아들여 바꾼 사람들

최무선은 전장에서 본 화약 기술을 한국식으로 발전시켰고,
마르코 폴로는 여행에서 본 동방의 문화를 서양에 전했습니다.

 

한 사람은 무기를,

한 사람은 기록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지키거나 확장했습니다.

둘 다 익숙한 경계를 넘어 낯선 세계로 들어가,
그곳에서 배운 것을 시대의 필요에 맞게 변형해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4.  최무선 vs 마르코 폴로

항목 최무선 (Choe Mu-seon) 마르코 폴로 (Marco Polo)
시대/국적 고려 말 (14세기) 베네치아 공화국 (13~14세기)
업적 화약무기 국산화, 진포 해전 승리 『동방견문록』 저술, 아시아 문화 서양 소개
대표 사건 원나라 사행, 화약 제조 성공, 진포 해전 쿠빌라이 칸 사절 활동, 중앙아시아·중국 여행
영향 고려 해상 방위 강화, 동아시아 화약무기 발전 유럽의 아시아 인식 확장, 대항해시대 촉발
공통점 낯선 세계의 지식을 받아들여 자국·세계에 변화를 줌

 

5. 마치며 

 

최무선과 마르코 폴로는 국경과 시대를 넘어, 낯선 세계에서 얻은 지식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에 새겼다.

최무선은 불길로 나라를 지켰고, 마르코 폴로는 기록으로 대륙을 이었다.

 

그들이 남긴 발자취는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도전과 용기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