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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하나로 세상을 웃기고 울린 두 남자 – 송해와 래리 킹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갑니다.때론 한마디 농담이 사람을 웃기고, 한 줄 질문이 마음을 울립니다.그 모든 순간엔 누군가가 마이크를 들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죠. 한국엔 송해가 있었고, 미국엔 래리 킹이 있었습니다.다른 시대, 다른 언어를 살았지만,두 사람 모두 말로 사람을 위로하고 이어주는 진짜 진행자였습니다. 1. “다음 참가자는요~” – 전국을 달린 송해1980년대, KBS 전국노래자랑 무대.흙먼지 날리는 운동장, 스피커 하나에 천막 무대,그리고 “다음은~ 고흥에서 오신 김말숙 어르신입니다!”라고 외치는 익숙한 목소리.전국 어디를 가도 송해 목소리를 모르는 이는 없었습니다.손자 자랑을 하며 울던 할머니,청춘의 첫 고백을 한 청년,그 모든 순간에 송해는 따뜻하게 웃으며 함께했습니다.전국노래자랑은.. 2025. 7. 23.
강감찬과 한니발, 수적 열세를 이긴 두 장군의 이야기 ‘강감찬’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교과서 속 귀주대첩의 영웅, 또는 초등학교 이름으로 익숙한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70세 노장의 나이로 거란의 대군 10만을 무찌른 전투는, 생각보다 훨씬 극적이고 치밀한 전략의 결정체였습니다. 지중해 건너편 고대 카르타고에는 한니발 바르카라는 전설적인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는 전투용 코끼리를 몰고 눈 덮인 알프스를 넘어 로마로 쳐들어갔고, ‘로마가 가장 두려워한 사나이’로 역사에 기록된 인물이죠. 이 둘은 시대도 대륙도 달랐지만, 전쟁사에서 유례없는 ‘기적의 승리’를 만들어낸 전략가라는 점에서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1 “그 나이에 출전이 가능합니까?” – 강감찬의 귀주대첩1018년, 거란족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했습니다.고려.. 2025. 7. 22.
황우석과 크레이그 벤터 – 생명과학의 빛과 그림자 한때 “한국의 희망”, “21세기 의학의 미래”라 불렸던 이름, 황우석. 그리고 인류 최초로 인간 유전체를 해독한 과학자, 크레이그 벤터. 두 사람은 생명과학계의 스타였고, 동시에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었다. 1. 인간 복제, 꿈인가 오만인가 – 황우석2000년대 초, 대한민국은 황우석 신드롬에 빠져 있었다. 그는 복제 소, 복제 개, 인간 배아 줄기세포 성공이라는 연구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그러나 2005년, 논문 조작과 연구 윤리 문제가 밝혀지며 몰락했고, 과학계에서 퇴출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민간에서 연구를 지속하며 명예 회복을 시도하고 있다.2. 유전자의 언어를 해독한 사나이 – 크레이그 벤터크레이그 벤터는 공공 게놈 프로젝트의 속도에 불만을 품고, 민간 기업 셀레라(Celera)를 세워.. 2025. 7. 21.
장승업과 앙리 루소 – 거리에서 태어난 두 천재 화가의 이야기 "화가는 붓을 든 순간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그 말을 실천하며 살았던 두 사람이 있다. 조선 말의 천재 화가 장승업과, 프랑스의 ‘정원사 화가’ 앙리 루소.이들은 정규 교육도, 부유한 후원도 없이 자기만의 그림 세계를 만들어 낸 인물이다.놀랍게도 두 사람 모두 제도권 바깥에서 천재로 불리며, 평생 그림 하나로 세상과 싸워야 했던 예술가였다. 1. “술 취한 그림쟁이”로 불렸던 장승업장승업은 정식 서화 교육을 받은 적이 없는 천민 출신이었다. 거리에서 그림을 팔며 생활을 시작했지만, 누구보다 그림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다.그는 술을 마셔야 붓을 든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예술가였다. 술기운이 오르면 사방팔방에 붓을 휘둘렀고, 놀랍게도 그 모든 선이 생명력을 품었다.그의 ‘매죽도’는 지금도.. 2025. 7. 20.
서재필과 벤저민 프랭클린, 두 시대의 개화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혁명이 시작되었다.”1896년 4월 7일, 조선 최초의 한글신문 《독립신문》이 인쇄소에서 막 찍혀 나오던 날이었다.인쇄기를 돌린 이는 바로 서재필. 조선에서 개화운동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탈출한 뒤, 미국에서 의사가 되어 돌아온 인물이다.그가 이 신문에 처음으로 적은 말은 이랬다. “백성이 알아야 나라가 산다.”그로부터 150년 전, 대서양 건너의 또 다른 식민지에서는 벤저민 프랭클린이라는 인물이 비슷한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 역시 인쇄공이자 출판인이었고, 《가난한 리처드의 연감》이라는 책으로 평범한 사람들에게 지식과 근면의 가치를 알리던 사상가였다. 1. 조선에서 필라델피아까지서재필은 조선의 양반 집안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가 택한 길은 유학이 아니라 혁명이었다.1884년 갑신.. 2025. 7. 18.
김만덕과 김창숙, 참된 책임의 이름- “노블레스 오블리주' 한 사람은 배고픈 이웃을 위해 쌀을 퍼주었고,또 한 사람 나라 없는 시대에 붓 대신 목숨을 걸었습니다.시대도, 성별도, 방식도 달랐지만 이들이 남긴 공통된 이름은 단 하나, 진짜 ‘노블레스 오블리주’였습니다. 1. 제주 여상인 김만덕, 재산을 쏟아부은 이유1795년, 제주에 큰 기근이 닥쳤습니다. 논밭은 말라붙고, 굶주림은 아이의 울음마저 멎게 만들었습니다. 제주도 관아는 속수무책이었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조용히 관아의 문을 두드렸습니다.“제 쌀을 좀 나눠주고 싶습니다.” 그녀는 김만덕, 평민 신분의 상인이자, 자신만의 손으로 재산을 일군 제주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어려운 삶 끝에 객주와 숙박업으로 부를 축적한 그녀는, 아무도 나서지 않던 그 순간, 자신이 가진 전 재.. 2025.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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