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를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

재러미벤뎀!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있어.?페놉티콘과 CCTV

by I watch Trends. 2025. 5. 9.
반응형

“누가 나를 보고 있는 걸까?”

이 질문은 21세기의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합니다. 엘리베이터 안, 횡단보도, 심지어 회사 화장실 입구까지. 이 모든 곳엔 조용히 우리를 지켜보는 존재가 있죠. 이름은 CCTV.

 

하지만, 이 감시의 원형이 18세기에 이미 상상되었다면 믿으시겠어요?

1. 패놉티콘, 모든 것을 본다는 상상

시계를 거꾸로 돌려 1785년. 영국의 철학자 재러미 벤덤(Jeremy Bentham)은 감옥을 설계하며

‘패놉티콘(Panoptic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그 뜻은 ‘모든 것을 본다’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왔죠.

그 구조는 간단하지만 혁명적이었습니다.

 

  1) 가운데 등대 같은  감시탑이 있고

  2) 그 주변을 원형으로 감방들이 둘러싸며

  3) 감시탑 안에서는 누구든지, 언제든지 죄수를 볼 수 있지만

  4) 죄수는 감시자가 자신을 보는지 알 수 없습니다

페놉티콘 상상도

 

결과적으로 죄수는 항상 감시받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스스로 행동을 통제하게 되죠

벤덤은 이 설계를 '최소하의 자원으로 최대의 통제를 실현한 이상형'이라며 열광했다고 합니다. 

2. 21세기의 패놉티콘은  CCTV

오징어게임 보셨죠..? 

드라마에서는 각자의 게임 참가자들이 감시당하는 것을 알면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행동과 언어에 통제를 받고 있는 상태입니다.)  

 

현실로 돌아와서 

현대. 우리는 도시 곳곳에서 CCTV를 마주합니다. 단지 범죄 예방이 목적일까요?

아니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렇게 느끼죠.

 

“지금 누가 나를 지켜보는 건 아닐까?”

CCTV는 패놉티콘처럼 물리적 감금은 없지만 심리적 감시는 강화합니다.

심지어 디지털 시대에는 AI 분석까지 가세하죠. 어디에 있었는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무슨 행동을 했는지…

모두 기록되고, 분석되고, 때로는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3. 벤덤이 예언한 감시사회?

우리가 많이 들어본 재러미 벤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외친 공리주의자입니다.

그는 감옥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패놉티콘을 제안했지만,

현대사회는 그 철학을 ‘사람의 행복’보다는 ‘사회의 효율’에만 가져온 듯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디지털 패놉티콘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감시는 늘 조용히 시작되고,
익숙해질 때쯤엔 이미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감시를 완전히 거부하거나 두려워하기보다 우리가 감시 기술을 어떤 기준으로,

어떤 윤리 아래 사용할지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4. 패놉티콘 vs CCTV

항목 패놉티콘 (Panopticon) CCTV (Closed Circuit Television)
고안자 재러미 벤덤 (Jeremy Bentham) 기술적 개발자 없음 (다수의 기술 진화로 형성)
시대 18세기 후반 (1785년 제안) 20세기 중반 이후 보편화
목적 죄수 통제 및 감옥 운영의 효율성 범죄 예방, 사회 안전, 질서 유지
감시자 노출 여부 감시자는 보이지 않음 카메라는 노출됨 (가시적 존재)
심리적 효과 자발적 규율 유도 ("감시당하고 있다"는 인식) 유사함. 존재만으로 행동 제어 유도
물리적 구조 필요성 필요함 (원형 감옥) 필요 없음 (공간 제약 없이 설치 가능)
디지털 분석 가능성 없음 있음 (AI, 안면인식 등 고도화 중)

5. 마무리하며

결론적으로,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감각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것이 실제 감시든, 상상의 감시든 말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이 감시 속에서도

 

누가 안 보더라도 스스로 자율성과 책임감이 더욱 강조되는 사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