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역사를 통해 현재 그리고 미래를 본다139 봉준호감독과 조던 필 —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두 감독 봉준호감독은 생활의 디테일에서 출발합니다. 문턱, 계단, 비 같은 작은 것들이 장면을 이끌고, 그 위에 구조와 계급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조던 필은 일상의 대화에서 시작합니다. 친절한 농담과 미소를 차분히 확대해 보면, 어느 순간 ‘시선’의 문제와 대표성의 질문이 보입니다. 이 글은 두 감독이 집이라는 공간을 어떻게 쓰는지, 어떤 장면 설계로 메시지를 전하는지, 그리고 현장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천천히 살펴봅니다. 1. 집에서 출발 — 반지하/거실/지하(봉)와 응접실/파티/티타임(필).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을 뒤집어 사회의 단면을 보여줍니다.2. 코미디×장르 — 웃음이 방심을 만들고, 방심은 메시지가 들어갈 틈이 됩니다.3. 스크린 밖 영향력 — 영화 생태계(봉), 대표성과 제작 생태계(필)를 각.. 2025. 9. 9. 김성수회장와 손정의회장 : 민족 자본가와 글로벌 벤처 자본가 1. 김성수회장과 손정의회장 : 방직공장과 글로벌 투자 무대1920년대 서울 종로 거리에 한 청년이 서 있었습니다.그는 일제의 눈치를 보면서도 한국인 자본으로 회사를 일으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바로 김성수회장였습니다.가난한 농가 출신이었지만 그는 “우리 민족의 손으로 만든 공장”을 세우겠다는 집념 하나로 경성방직을 설립했습니다.일본인과 외국 자본이 장악한 산업 현장에서 한국인의 기업을 세운다는 건 무모해 보였지만,김성수회장은 “안 되면 될 때까지”라는 투지로 밀어붙였습니다. 반세기 후, 일본 사가현의 한 재일 한국인 가정에서 또 다른 청년이 자라납니다.이름은 손정의회장. 그는 고등학교 시절, 미국 신문에서 스티브 잡스의 기사를 읽고 충격을 받습니다.“세상은 아이디어 하나로 뒤집힐 수 있다.” 영어도 서툰 .. 2025. 9. 6. 알랭 드 보통과 김용옥 - 철학을 생활로 끌어낸 두 사람 1. 철학은 멀리 있는가, 가까이 있는가?철학이라 하면 두꺼운 원서와 고전의 어휘가 떠오르지만,1990년대 이후 철학은 서서히 ‘생활’의 언어를 입기 시작했습니다.그 선두에 서 있던 두 이름,영국에서 활동한 알랭 드 보통과 한국의 도울 김용옥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자랐지만, 두 사람은 “철학은 삶 속에서 쓰일 때 비로소 살아난다”는 믿음을 몸소 보여주었습니다.한 사람은 개인의 마음을, 다른 한 사람은 사회의 의식을 두드렸습니다.런던 북숍 ‘삶의 학교’에서 알랭 드 보통의 무대는 서점·강연·영상 콘텐츠—잔잔하지만 오래가는 울림.대학 강의실 공개 강연김용옥의 무대는 강단·광장—폭포수 같은 직설로 현실을 흔드는 언어.2. 런던의 한 구석, 사랑을 철학으로 번역하다 — 알랭 드 보통1993년, 런던의 작은 북.. 2025. 9. 5. 피에르 포샤르와 박정철 교수 - 치아치료의 개척자 치통은 인류가 가장 오래 겪어온 고통 중 하나입니다.하지만 이를 과학으로 다루고, 환자의 삶의 질을 회복시키는 길을 연 인물들이 있습니다.18세기 프랑스의 피에르 포샤르와21세기 한국의 박정철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1. 피에르 포사르의 실험실, 미신을 깨다. 1700년대 초, 프랑스의 작은 시골 마을. 한 여인이 치통으로 밤잠을 설치다 포샤르를 찾아왔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충치가 벌레가 갉아먹어 생긴다고 믿었죠.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제 치아 속 벌레를 꺼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포샤르는 현미경으로 그녀의 썩은 치아 조각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 벌레가 아닙니다. 우리가 먹은 음식이 남아 썩고, 그것이 치아를 상하게 하는 겁니다.” 그날 그는 발치.. 2025. 9. 4. 빌리 브란트와 요한 바오로 2세: 무릎 꿇은 총리와 무릎 세운 교황 분단과 화해, 자유와 인권을 상징한 두 인물의 일화로 읽는 냉전사의 교훈 한 사람의 진정성 있는 몸짓은 때로 조약보다 강하다. 1. 바르샤바의 무릎 꿇은 총리 1970년 12월, 눈 내리는 바르샤바 게토 추모비 앞.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헌화를 마친 뒤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현장은 충격과 침묵으로 얼어붙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였고, 전 세계 기자들이 숨을 죽였다. 브란트의 무릎 꿇음은 전후 독일의 회피를 멈추게 한 행동의 언어였다. 그는 젊은 시절 나치에 맞서 망명했던 인물이었다. 과거의 죄를 국가 지도자의 위치에서 인정하고, 화해의 출발점을 마련하려 한 진정성의 표현이었다. 당시 서독과 동독은 냉전의 장벽으로 갈라져 있었지만, 브란트의 동방정책(Ostpolitik)은 대.. 2025. 9. 3. 엄홍길대장과 에드먼드 힐러리 - 히말라야를 넘은 두 사람 산은 인간에게 언제나 도전과 신비였다. 누군가는 그 앞에서 무릎 꿇었고, 누군가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그러나 어떤 이들은 정상을 딛고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았다. 한국의 엄홍길대장,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두 산악인의 삶은 ‘정상’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고, 그 발자취에는 도전과 나눔이 함께 담겨 있다.1. 정상에 선 순간 1953년, 힐러리는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그는 원래 뉴질랜드 시골의 평범한 양봉업자였다. 그러나 끝내 세계사의 한 장면에 이름을 남겼다. 정상에 선 뒤 남긴 말은 지금도 회자된다.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에베레스트가 우리를 허락한 것이다. 수십 년 뒤, 엄홍길은 히말라야 8,000m급 고봉 16좌를 모두 .. 2025. 9. 1. 이전 1 2 3 4 5 6 7 8 ··· 24 다음 반응형